이런저런 얘기들 53

Posted at 2010/01/15 15:28// Posted in life in Seoul



꽤 잘 버텼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떨렸다.
모르겠다 난. 아마 평생 이걸 어려워할 거다.

회사의 신년 첫 수주이자 손에 꼽을만큼 큰 버짓의 프로젝트였던 하나HSBC생명보험 비딩을 글로벌 에이전시 두 개 제치고 따냈다. 내가 메인으로 준비하고 피티한 데다 제안서 만드느라 보름 고생, 리테이너 네고하느라 달포 속 끓인거 생각하면 흡사 내 새끼 양육권 찾아온 것 같아 서대문 사거리에서 춤이라도 추고싶네. 전업무 국영문 동시진행이라는 단서 덕분에 손쉽게 일감은 두 배가 됐지만, 이 바닥에서 일의 보람이라는 건 이런 거다. 외국계 클라이언트를 해보고 싶었고 파이낸스 레퍼런스가 필요했으니 일이 다시 재미있어진 건 당연하다.

십이월 십팔일 두시 사십분 피티하던 날, 나를 바라보던 본사 임원 열 명의 시선, 내 옆의 사장님 부장님 과장님의 표정, 그곳의 공기, 다 생각난다. 부장님은 어떠셨을지 모르겠지만 난 간절함 따위는 없었고 다만 비딩에 들어온 다른 두 회사를 무조건 이기고 싶었다. 

수주 소식도 그렇고 사적으로도 신년부터 인생이 좀 활기찬 듯. 

휘슬러랑 블랙콤 꼭대기 연결해주는 피크 투 피크 곤돌라 생겼다며? 지난 겨울부터 운행한다는데 세계에서 가장 높다더라. 그럼 이론적으로는 블랙콤 세븐스 헤븐으로 올라갔다가 휘슬러 하모니로 내려올 수 있다는 얘기인데, 거 참 신기하네. 랍슨의 샹그릴라도 그렇고, 내가 없으니 이제 별의별 놀라운 걸 다 짓는구나.

소민언니는 백년해로보다 더 힘들다는 칠년 롱디 연애의 종지부를 결혼으로 마무리지었다. 두 분 다 필시 부처님 가운데 토막임이 틀림없다. 난 언니에게 세상에서 제일 부럽다고 말해주었다. 사실이니까.

구직난이 심하다지만 회사 다니는 사람들은 입을 모아 이야기한다. 구직이 아닌 구인이 더 문제라고. 실제로 회사마다 다들 괜찮은 인재를 못 구해 아우성이다. 우리 팀에서 파트타임을 한 명 뽑아야 되는 상황인데, 경영지원팀에서 알바 사이트에 공고를 올리며 서류 제출처를 내 개인 메일로 해놓는 바람에 나의 소중한 지메일에는  이력서가 넘쳐나고 있다. 문제는 아주 간단한 이력서 에티켓조차 지키지 않는 지원자들이 부지기수라는 점. 이틀간 받은 몇십명 중 멀쩡하고 사람은 두서넛을 꼽을까 말까 한다. 이래놓고 구직난이라니, 니네 정신 차리려면 아직 멀었다.

며칠 전 티비에서 백수탈출기 컨셉으로 오랜 기간 취업에 실패한 애들을 중소기업과 연결시켜주는 다큐멘터리를 방영했다. 백수 중 한 명인 그는 별볼일 없는 학벌과 별볼일 없는 화술과 별볼일 없는 경력에 심지어 별볼일 없는 외모를 소유했는데, 해외영업이 하고싶다는 그의 바람에 맞게 해운회사인가 무역회사에서 며칠간 일하게 됐다. 사실 사무실에서 그가 하는 일이야 안 봐도 뻔하지. 퇴근 후 같은 백수들끼리 모인 자리에서 그는 고백했다.

"하루 종일 복사하고...난 실제 업무를 배우고 싶은데, 솔직히 재미는 없지."
이걸 시청하던 나와 아빠는 굉장히 충격받았다. 얜 양면복사도 할 줄 모르고 팩스도 보낼 줄 모르고 심지어 전화받는 법도 모르는 앤데, 이런 간단한 것조차 제대로 못하는 주제에 니가 실제업무는 자시고 뭐는 똑바로 할 줄 알겠니?  정신 차리려면 아직 멀었다 얘.

담배가 마리화나보다 중독성과 의존성이 더 심하다는거 얼마 전에야 알았다. 그런데도 담배가 합법이며 마리화나가 불법인 이유는 환각성 때문이란다. 차라리 둘 다 불법이든가 하지 이런 비논리적인 경우는 뭔가. 담배세는 그렇게 매겨놓고 금연 캠페인도 만날 벌이면서 코리아 진생 앤 토바코는 편애하고 말이야. 차라리 그럴거면 다 허용하자며 한국에서도 극소수를 중심으로 마리화나 합법화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는거 안다. 그럴 때마다 밴쿠버의 우리 오빠는 열변을 토했다. 저것들이 헤이스팅스 한복판에 내동댕이쳐져서 약쟁이들 사는 꼴을 봐야 정신을 차리지. 마리화나로 시작한 약이 헤로인을 지나 크랙까지 뻗어나가는데 얼마나 짧은 시간이 걸리는지 직접 깨달아야 저딴 소리 안하지...헤이스팅스 두 발로 걸어서 지나는 미칫진 경험자로서 백번 맞는 말이다. 

요즘 페스토에 중독된 것 같다. 난 포와 페스토를 맛있어하는 남자를 원한다. 아! 루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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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w
    2010/01/24 00:10 [Edit/Del] [Reply]
    '정신차리려면 아직 멀었다' 왠지 저한테 하는 말 같은ㅠㅠㅋㅋㅋ 저도 뭔가 보람있고 활기찬 새해를 맞고 싶군요! 으헝ㅎㅎ

Lovely comment to Rach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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