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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르카디아를 찾아서 (1) 2009/02/17

아르카디아를 찾아서

Posted at 2009/02/17 10:57// Posted in cooool stuff



퐁피두센터 특별전, 시립미술관

주말에 미술관에 절대 가지 않는다는 것은 나의 오랜 철칙이나 직장인이 되면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어졌고, 덕분에 도때기 시장 버금가는 인파 속에서 사람에 치이며 전시를 관람해야만 했다. 워낙 홍보를 잘 해놓은 전시라 문화인이 되기 위한 열망이 넘치는 사람들로 시립미술관은 인산인해를 이뤘다. 

특히 어린이들을 데리고 온 가족 단위의 관람객이 유난히 많았는데, 미안한 말이지만 나는 미술관에 십삼세 미만은 아예 출입을 금지시키든지 평일 오전 시간대에만 제한적 입장을 시켜야 한다고 본다. 집중도가 현격히 낮은 건 그들의 잘못이 아니라 성장 과정의 약점이니 탓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이것은 보호자의 문제다. 어린이를 동반한 관람객은 둘로 나뉜다. 첫째, 예술이 주는 감동에 부모가 너무 깊이 빠져 같이 온 자식을 방치한다. 이럴 경우 미술관을 놀이터로 착각하는 아이들 때문에 갈비집에서 술래잡기 하는 몹쓸 녀석들과 비슷한 상황이 연출된다. 둘째, 투철한 교육열로 아이의 손을 잡고 모든 미술 작품 앞에서 본인이 큐레이터인 것마냥 일일이 기획의도와 작품설명에 대한 일장 연설을 거치는 경우. 아이의 정신건강에는 도움이 될 수도 있겠으나 대신 주변의 관람객들의 정신이 산만해진다. 이건 뭐 생태관광도 아니고, 극장에서 영화보는 것만큼 입을 다물어야 할 필요는 없지만 나에게도 조용한 분위기에서 미술을 감상할 권리가 있는 것 아닌가. 결론은 두 부류 다 민폐라는 얘기다. 미술관 안에 놀이방을 만들거나, 요즘은 어린이 도슨트 프로그램도 잘 되어 있으니 그리로 다 보내버리고 지들끼리 해결했으면 싶은게 내 소망이다.

또 다른 관람객 층이라면 미술에 조예가 별로 없는 여-여 커플과 미술관 데이트를 통해 자신들을 고상한 연인으로 격상시키고 싶은 남-여 커플이 되겠다. 이들의 특징은 무조건 전시장 입구에서 미술관에 다녀왔다는 기록을 남기기 위한 싸이 업데이트용 인증샷을 (주로 여자가) 찍는다는 것인데, 이 날은 심지어 이 사진 한 장을 위해 디에스엘알까지 출동했다 맙소사. 전시장 안에서 이들은 그래도 꽤 모범적인 관람객이나, 가끔 방문의 의도가 의심되는 행동도 했다. 한 남자가 마티스의 그림 앞에서 여자친구의 허리를 감으며 말했다.
"얘는 왜 배경을 다 빨간색으로 칠해놨어? 눈 아프다. 완전 싸이코패스같네."
나는 그가 예술적 식견을 넓히기 위해 미술관을 방문한 것이 아님을 확신했다. 그저 여자와 만날 장소를 찾던 중 영화관과 까페가 너무 물려버린 나머지 대체 공간으로 미술관을 선택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 기본적인 상식조차 모른 채로 올 수는 없는거다. 물론 그런 의도의 미술관 방문이 범죄는 아니겠지만 거장들에 대한 예의도 아닌 것은 분명하다. 그는, 약칭 김무식씨는, 마티스가 누군지 모르는 것이 분명하므로. 

너무 오랜만에 북적대는 미술관을 갔더니 한 가지 재미있는 현상도 포착했다. 삼층보다 이층에 인파가 얼추 세 배는 더 많고, 전시장 중반보다 초반에 더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무엇보다 입구에서 사람들이 '첫 작품'을 보기 위해 줄을 맞춰 서있는 것을 보고 굉장히 놀랐다. 처음에는 절대 놓칠 수 없는 중요한 작품이라 사람들이 모여있나 보다 싶었는데 머리를 들이밀고 확인해보니 그냥 피카소의 목탄화였다. 롯데월드 자이로드롭 기다리는 것처럼 그냥 '입장하려고' 줄을 서있었던 거였다. 미술관에서.

물론 그들의 관람객의 동선과 그림의 눈높이 위치와 액자 디자인까지 의도대로 배치한 큐레이터들의 노고를 치하하느라 그랬을 수도 있다. 큐레이터가 어련히 알아서 입구에서부터 순서대로 관람하면 감동이 더 물결치도록 기획했을까. 그러나 도슨트도, 음성해설도 잘 사용하지 않고 종횡무진 돌아다니며 전시를 관람하는 나로서는 왜 굳이 전시를 '순서대로' '처음부터' 보려고 드는지 잘 이해할 수 없었다. 병아리반 소풍가듯 내내 일렬종대로 맞춰 움직이는 에프엠적인 버릇이 미술을 더 어렵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미술은 혼자 느끼고 받아들여야 한다. 저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는 한 작품에 꽂혀 그 앞에서 조금이라도 시간을 지체하면 뒷사람들이 '빨리 가라고' 눈치를 줬다. 마치 퇴근길 내부순환도로 이차선에서 갑자기 멈춰버린 자동차의 운전자가 된 것처럼 허겁지겁 감상을 깨고 다음 순서의 작품으로 이동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참고로 전시에서는 후안 미로와 샤갈, 페르낭 레제가 볼 만했고, 아상블라쥬를 쓴 마르샬 레스의 '지난 여름 갑자기'도 좋았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작품은 지우세페 페노네의 설치작품 '그늘을 들이마시다'. 월계수잎으로 사방 벽이 뒤덮인 공간에서 나는 이러한 인사이트를
생각해낸 페노네와 의도를 살려 꼼꼼히 전시한 미술관 측에 감탄했다. 작가는 몇 년간 월계수 이파리를 꼼꼼히 수집해왔다고 했다. 우리의 아르카디아(천국)을 지켜나가기 위해서 어떤 것들을 소중히 여겨야 하는지 너무도 잘 보여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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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희원
    2009/02/19 16:14 [Edit/Del] [Reply]
    난 전시 보면서 "그늘을 들이마시다"의 초기 모습이 너무 보고싶어졌어
    공간적 미학뿐만 아니라 시간까지 고려한 작가가 너무 놀라웠다고나 할까-_-;


    (시립미술관이 작아서 원래 작품 모두를 들고 오지 못했다더군.)

Lovely comment to Rach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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